SI그림책학교 수업/Drawing; principle of dessin
처음으로 누드모델을 보고 그림을 그렸다. 수업 전에 같이 수업 듣는 언니와 얘기하면서 처음이라 설레기도 하고 걱정된다고 했더니, 그분들은 프로라서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그리다 보면 그림에 집중하게 돼서 괜찮을 거라 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피사체로서의 그녀는 프로였다.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녀만의 음악을 선곡했고, 선경이 미리 말해준 시간을 타이머에 세팅해서 그리는 사람들이 시간에 맞춰 그녀의 포즈와 그녀가 만들어내는 몸의 선들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세상엔 참 멋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새로운 세계를 겪으면서 또 한 번 느낀다.
오늘의 수업은 모델을 보고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리는 걸 수업 내내 연습했다. 한 포즈 당 5분씩 그리는 걸로 손을 풀었고, 10분씩으로 늘려 형태에 더 집중하면서 그려보았다. 내 눈은 시각적으로 모델의 비례, 각도, 형태, 넓이, 두께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눈에 보이는 그대로 관찰한 것을 손으로 얼마나 정확하게 옮겨낼 수 있는가가 이 수업의 키포인트였다. 명암과 톤을 배제한 채, 선을 겹쳐서 사용하지 않고 한 선으로 단순하게 그리는 것.


선경은 드로잉과 페인팅은 다른 의미라고 했다. 그 전까지 크게 구분 짓지 않고 사용했던 것 같은데, 설명을 듣고 보니 확실히 비교가 되었다. 전통적인 의미로 설명하자면ㅡ드로잉이라는 것은 페인팅을 하기 전에 설계도면 같이 형태를 파악하기 위한 기초선(line)이고, 페인팅은 면(texture)을 사용하는 방법인데, 현대에 와서는 드로잉 자체가 하나의 가치 있는 작품으로 인정되기도 한다.
드로잉의 메인 재료는 선(line)인데, 선이 만들어 내는 두 가지 요소로 1. 형태와 2. 선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있다.
1. 형태
선의 길이, 넓이, 가로/세로의 비례가 만들어내는 미학에 의해 형태가 만들어진다. 과거의 그림은 정확한 형태를 재현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기술의 발달과 트렌드의 변화로 더이상 현실에서 보이는 대로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불필요해졌다. 그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변형과 나만의 해석을 가해서 새로움과 독특함을 만들어내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 어떻게 변형을 해야 할까?
드로잉이라는 것은 상당히 압축되어 있는 그림이라 선으로 묘사를 할 때, 우리는 대상의 100% 모든 것을 그릴 수 없다. 대상의 어떤 부분을 그림으로 옮길 것인지를 선택해서 그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렇게 취사선택하는 부분 중에서 대상의 기능적인 부분을 살리고, 객관적으로 인식화된 비례를 지키는 것을 전제하에ㅡ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핵심)은 크게 그리거나 중앙에 두거나 이 부분이 의미가 있다는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게 그리고, 비교적 덜 중요한 부분은 무시하거나 축소하거나 생략하는 방식으로 형태를 만들어낸다. 대상도 상황에 따라 강조해야 하는 특징이 달라지므로 무엇을 가져올 것인지, 어떤 부분을 강조할 것인지 그때 그 때 상황에 맞게 판단해야 한다.
2. 선이 만들어내는 감정
선의 가늘기, 강약을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서 선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달라진다. 선에서 감정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하려면 먼저 내가 선을 쓸 수 있는 절대량을 채워야 한다. 선을 쓰는 시간을 늘려가고 손이 풀리는 과정에서 선의 감정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될 거다. 선을 그릴 때 이런 근육을 써야 하는구나, 이 선을 그리려면 손가락과 손목을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구나 몸이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한 대상을 반복해 그릴 때, 대상을 움직여보거나 내가 직접 움직여서 보는 각도를 바꿔가면서 360도 중에 가장 드라마틱한 scene이 나오는지, 보는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감정들을 캐치해보는 훈련도 같이 한다. 대상을 볼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절대량이 채워지고, 보는 눈이 생기면 드로잉이 좋아지고, 드로잉이 좋아지면 다른 재료를 쓸 때도 드로잉이 기본 베이스로 들어가기 때문에 잘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드로잉에 할애하는 시간을 많이 늘려야 한다고 하셨다. 역시 연습만이 살 길이다 싶다. 더 부지런해지자, 낭만다람쥐!